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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고석정(孤石亭) 171218

by 理 菊/朴秀楨 2017. 12. 19.

 고석정()은 철원팔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로 꼽힌다. 한탄강 한폭판에 치솟은 10여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천연덕스럽게 우뚝 솟아 있고, 그 양쪽 허벅지쯤으론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여기에 신라 진평왕 때 축조된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기암이 외따로 우뚝 서 있는 절벽바위 이름을 외로울 ‘고’자 고석()이라 했다.

 

 

 

 

 

 

강폭 양쪽 주변으론 깎아지른 절벽이 산수화처럼 아름답게 서 있고, 옛 정자는 사라졌으나 원래의 자리에 근래 세운 정자가 있다.

 

 

 

 

 

지방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고석정은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시대 의적으로 불린 임꺽정(, ?~1562)의 활동·은거지로 알려지면서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이다.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은 의기가 있고 뜻이 굳어 일찍이 국정()에 맘을 두었으나 신분이 천민이어서 뜻을 펼 수 없었다.

 

 

 

 

 

울분을 삭이지 못하던 임꺽정은 당쟁으로 조정이 어지럽고 사회기강이 혼란스럽던 1559년(명종 14)부터 대적당()을 만들어 동지들을 규합하고 두목이 된다.

 

 

 

 

 

그로부터 3년 동안, 1562년까지가 임꺽정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다. 황해도 구월산과 서흥·신계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관청이나 토호·양반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았다. 함경도와 황해도 방면의 곡물이 조정으로 운반되는 길목에 성을 쌓고 진상품을 약탈, 서민들에게 나눠주었으며, 약탈한 물건을 서울이나 개성 등 다른 지역으로 가지고 가 팔기도 했다.

 

 

 

 

 

임꺽정은 관군의 토벌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적어도 3년 이상을 버텨낸 놀라운 인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활동영역은 강원도와 개성, 경기도 등지로 확대되었으며, 변장술·사칭술도 뛰어나 관청에 들어가 수령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 임꺽정 일당은 어디서든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민이 되어 관군의 눈을 피해 교묘히 빠져나갔다. 그러니 토벌에 지친 순경사(使)는 1561년 정월 꺽정의 형 가도치()를 잡아 꺽정이라 허위 보고하는 사건도 생겼으며, 꺽정을 사칭하는 가짜 임꺽정도 종종 등장하곤 했다.

 

 

 

 

 

임꺽정은 점점 나라의 기강을 흔들 만큼 위협적인 인물이 되어갔고, 조정에서는 갖가지 포상을 내걸며 그의 체포를 독려했다. 임꺽정은 1562년 1월 황해도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토포사(使)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역사는 보는 입장에 따라 임꺽정을 정반대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연려실기술』 등에서는 임꺽정을 포악한 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뒷날 민중들 사이에는 의협심 많고 정의로운 전설적인 인물로 전해오는 것이다

 

 

 

 

 

 

가로 두 장 파노라마

 

 

 

 

 

조그마만 산의 중턱에 저렇게 많은 폭포가 있을 리 없고, 어떻게 저런 빙벽 고드름이 생겼는지 참으로 기이한 자연현상이다.

 

 

                                                               대 단 히   감 사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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